(7일째) 만사는 뽑아 읽는다
데니스 덩컨, 《인덱스》 (2023)
《인덱스》라는 책을 발견했다. 부제가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색인의 역사”였다. ‘색인’이라… ‘도구’에 관해 관심이 많던 만사는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인덱스: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색인의 역사》, 데니스 덩컨(지음), 배동근(옮김), 아르테, 2023.
이 책은 책을 그것의 구성 요소, 인명, 주제 또는 심지어 개별 단어들로 해체한 뒤 철자순으로 배열한 목록 또는 티투스 황제처럼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특정한 독서 방식 — 학자들이 '발췌 독서'라고 부르는 — 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기술적 창안물, 즉 색인에 관한 책이다. (p.22)
색인이 만들어진 이유가 “발췌 독서”라는 특정 독서 방식을 위한 것이라고 규정한 점이 흥미로웠다. 만사의 고질적인 문제는 책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으려 하는 것이다. 그것은 느린 속도, 집중력 저하, 중도 포기, 독서에 대한 흥미 저하 등 부정적인 효과가 더 많았다. 그래서 지금은 저자가 쓴 서문을 중심에 두고 발췌 독서에 가까운 쪽으로 가고 있다.
이 책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이렇다.
색인이 독서 생태계의 다른 변화들(소설과 카페에 진열된 정기간행물과 과학 저널의 출현 등)에 어떤 식으로 대응해 왔는지
그런 변화의 지점에서 독서와 독서 자체가 어떤 식으로 변해왔는지
색인이 이전 독서 방식에 익숙한 독자들이 갖게 된 불안에 대해 어떤 식으로 책임을 졌는지
만사는 책을 읽다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디스팅티오(distínctĭo)’라는 것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수도원의 가르침이 고요한 명상에 초점을 두고 있었던 반면, 종교적 또는 세속적 행정기관의 직업적 출세를 위한 교육을 담당하던 학교와 대학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교수법이 주도권을 잡음.
토론, 근거가 되는 권위 있는 문서를 인용, 주석 읽기
강의(lecture)라는 이름의 형식
대학의 가르침은 내적 깨우침보다는 외적 논증, 끊임없는 명상보다는 지적 민첩함 강조함
대학의 독서가들은 책을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 요구함
텍스트 전체에서 일부분 — 단어나 구절 — 을 효율적으로 찾아내는 새로운 수단 요구함
[중세] 교회는 새로운 선교 방식의 중요성을 절감함.
설교자와 선생 같은 새로운 독서가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책을 근본적으로 탈바꿈시켜야 할 필요가 생김
설교 중에 의사소통과 설득의 중요성이 새롭게 대두되면서 대학 교육과 필적하는 수준의 텍스트에 대한 기민한 분석이 요구됨
대학과 동일한 수준으로 성경에 대하여 빠르고 정연하게 사고할 필요도 생김
세분화하거나 종합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방식들
책 페이지 리모델링
다채로운 색 추가
곳곳에 온갖 기호와 구분 표시 삽입
민첩하고 요구사항이 많은 독자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가게만 하는 것이 아님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즉각적으로 — 벌레 먹은 구멍처럼 — 쏙 빼내어 제공하기 위함
나중에는 '인덱스'라고 불리게 될 '디스팅티오(distinctio)'와 같은 새 도구를 고안해야 할 순간이 옴
'디스팅티오'라는 원칙.
주제를 정하고 그것을 철저히 분석하여, 마치 사전이 한 단어에 대해 다양한 의미를 늘어놓듯이, 서로 구별되는 다양한 뉘앙스를 펼쳐 보임
사전의 정의처럼 이들 디스팅티오를 합쳐서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편찬할 수도 있음
디스팅티오 컬렉션은 개별적 성경 분석을 수집하여 모아놓을 수도 있음
흔히 수백 개에 달하는데 설교를 위한 참고 자료, 아이디어 창고로 이용됨
사전 항목들과는 달리 개별적 디스팅티오는 완성을 목표로 하지 않음
단어를 정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님
다양한 뜻을 배열하는 과정에서 기억하기에 좋은, 일련의 정기 기항지 같은 틀을 제공해 줌
각각의 디스팅티오는 기억을 돕는 상기물(aide-mémoire) 역할을 함
정해진 주제에 대한 '커닝 페이퍼'
설교를 위해 자료를 디스팅티오로 분류하는 것은 객관적인 분류라기보다는 다양한 자료를 용이하게 뒤섞어서 조합하고 설교자가 그 조합한 자료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수단이다. 강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강연 중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단순하면서도 엄격하게 디스팅티오를 배열하는 것이다. (...) 그렇게 하면 강연자는 강연의 핵심을 과장할 수도, 옆길로 빠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수사적 임기응변이 즉석에서 가능해진다." (p.107)
디스팅티오는 독서에 관해 더 많은 어떤 것을 말해줌.
그것은 우리가 [성경이 아닌] 다른 책들도 또한 발췌된 형태로 읽을 것을 요구함
수도원식 읽기의 의도적인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근거가 되는 자료 — 한 구절, 어떤 비유, 한 순간 등 — 를 찾아 일련의 탐색을 하도록 만듦
디스팅티오는 색인처럼 책의 지도를 제공하기보다는 창의적 읽기의 순간에 대한 마인드맵을 제공하는 것에 가까움.
체계적이지도 순차적이지도 않음
오히려 단어 하나, 개념 하나에 의해 자극을 받아 예기치 못했던 다양한 방향으로 번져가는 관계적 읽기임
어떤 용어의 예를 쫓기보다는 그것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하기보다는 설명함
(pp.99~111)
만사는 이걸 읽고 계속 머릿속에 제텔카스텐이 떠올랐다. 의도, 제작 방식, 활용 측면 모두가 닮아있었다. 니클라스 루만이 제텔카스텐으로 자신의 학문을 구축하게 된 것도 이런 유구한 지적 전통 아래 있었던 것 아닌가 싶었다.
과거의 독서 습관에서 새로운 독서 방식으로 이동하며 만사는 약간의 불안 같은 것이 있었다.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계속 놓치며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런 몸부림 역시 인류의 독서 역사 안에서는 작고 하찮은 걱정일 뿐이었다.



땡땡 년도 훨씬 전인, 2007년도에 처음 배울 즈음 재미를 느끼면서; '색인만 다룬 책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까마득히 잊고 있었네요. 재미날 것 같아요.
마지막 문단의 "몸부림"에 공감합니다. 그러면서 전 인용도 막 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