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째) 만사는 파워포인트를 진짜진짜 싫어한다
파워포인트는 단순히 문서작성 도구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자료를 작성하는 것과 그것을 강의(보고, 발표, 교육 등)하는 것 사이에는 큰 단절이 있다. 만사는 회사에서 보고나 발표 자료를 준비하며 뭔가 어긋나 있다는 것을 계속 느꼈었다. 그런데, 월터 J. 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읽고나서야 그 느낌의 정체와 원인을 발견했다.
회사에서 숱하게 이루어지는 보고는 보통 그 보고를 받는 대상의 직급의 높고 낮음에 따라 투입하는 노력과 시간의 양이 달라진다. 이렇다보니,
중요한 보고일수록 당연히 들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내용이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보고 문서는 대부분 MS 파워포인트로 만든다. 많은 내용들이 수많은 장표(슬라이드)마다 빈틈없이 꽉꽉 채워진다.
시각적으로 가득 채워진 문서가 성실성과 전문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백 있는 가독성을 추구하려면 기백이 필요하다. ‘여백 = 불성실성 = 대충하는 보고’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위험과 두려움이 있다.
장표가 관련 자료들로 숨쉴 틈 없이 채워지다보면 정작 그 보고에서 중요한 스토리라인은 자료들에 깔려버린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 자료를 만든 사람은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그 사람의 머리 속에는 이미 스토리라인이 각인되어 있고, 공들여 수집하고 가공한 자료들이 매우 중요하고, 어느 하나 뺄 게 없다는 자기확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종 보고 전, 중간에 있는 직급자에게 우선 보고할 기회가 있고, 그 상급자가 괜찮은 필터 역할을 해준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미 이 보고는 그 중간 직급자의 영향력과 지시 하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관점은 비슷하다. 이미 ‘성실하게’ 작성한 보고서라면, 큰 변화는 없다.
드디어 최종일이다. 보고를 시작한다. 파워포인트를 스크린에 쏜다. 경우에 따라 인쇄한 자료들은 이미 참석자들 앞에 놓여져 있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짧다. ‘높은 분들’은 보고 받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0분 단위로 일정이 짜여져 있다. 발표자도 그걸 알고 있다. 급히 자료를 읽어나간다. 잠깐. ‘읽는다’고? 이건 ‘말’로 하는 보고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앞에서 말한 ‘큰 단절’이 생긴다.
결국 빚어지는 문제는 이렇다.
첫째, 글로 쓴 것은 글쓴이가 오랫동안 심사숙고하고 여러 차례 수정한 결과물이다. 게다가 전체 내용이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듣는 이는 지금 처음 듣는 내용이니 듣는 동시에 이해하며 판단해야 한다. 당연히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래서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성질 급한 사람들은 발표는 듣지 않고 인쇄된 자료를 읽고 있는다.
둘째, 오랜 경험의 능숙한 발표자들은 그러지 않겠지만, 글로 쓴 것을 그대로 읽는 것은 최악이다. 드라마 대사처럼 쓰지 않은 이상 입에 잘 붙지 않는다. 만약 발표자의 ‘말’로 바꿔 말했을 때, 듣는 이들은 집중하지 않으면 문서의 어느 부분인지 놓치기 쉽고, 이러려면 문서는 왜 이렇게 작성했을까하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셋째, 발표자가 각 장표들의 핵심 메시지를 짚으면서 진행하면 듣는 이들이 그것을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해서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듣는 이들에게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특히 높은 직급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이것 외에도 여러 의사결정 사항들이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것들과의 연관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 발표의 마무리 부분에서 의사결정 사항을 정리해서 보여주기도 하지만 앞의 내용을 따라오지 못했다면 이 내용은 매우 맥락없이 느껴질 것이다.
넷째, 이 문제가 가장 익숙하며 본질적일 수 있는데, 듣는 이들이 청각과 시각 모두에 집중해야한다는 문제다. 다시 말해, 발표자의 목소리도 ‘들어야’ 하고 동시에 스크린에 띄워진 장표의 내용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둘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동시에 집중하기 힘들다.
보고 내용을 완전히 파악한, 뛰어난 보고자들은 이런 문제를 자신의 역량, 개인기로 돌파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만사가 생각하는 문제의 해결책은 이렇다.
혼자 만들지 말자. 자신의 관점으로만 오래 생각하고 쓰다보면 남들은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동료들과 메시지, 스토리라인, 사용할 자료의 범위를 함께 (처음 한번이 아니라) 계속 상의해야 한다. 작성할 장표를 분담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말이냐 글이냐’를 선택하자. 발표나 교육처럼 구두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경우에는 ‘말’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글의 비중과 분량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연말이면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내년도 사업계획’처럼 문서가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그때는 글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강의나 교육 같은 경우, 풍부한 관련 정보 제공도 겸할 수 있게 문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교육 후에도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의도는 좋지만 교육 내용과 정보 제공, 이 둘은 분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정보는 오히려 웹페이지나 클라우드에 저장한 파일로 제공하는 편이, 계속 변화하는 정보의 속성, 듣는 이들의 정보 보관, 활용 측면에서 더 장점이 많다.
각 장표의 메시지는 확실히 알려주자. 듣는 이들이 발표 내용을 듣고 짧은 시간 동안 그것에서 바로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메시지를 정리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야 집중력을 유지하며 경청할 수 있다.
스토리라인을 분명히 알 수 있어야 한다. 각각 떨어져 있는 메시지를 연결해서 하나의 스토리라인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많이 해 본 사람들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대표적인 구조는 ‘기승전결’이다. 각 메시지가 다른 무게감, 강약을 가져야 이 구조로 향해갈 수 있을 것이다. 몸짓이든 반복이든 메시지들을 다르게 강조하면서 스토리를 정리해서 전달하면 좋을 것 같다.
예쁜 파워포인트 장표가 좋은 보고서가 아니다. 사실 이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 가장 현실적인 문제다. 디자인이 그렇듯해야 전문가처럼 능력 있게, 최소한 미숙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40~60 포인트 크기의 글자들로 채워진 보고서를 용인할 국내 기업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만사는 회사 다닐 때 파워포인트 문서를 작성하는 게 가장 싫었다. 핵심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자료들을 보기 좋게 배치하고 예쁜 말머리를 붙이고 성의가 느껴질만큼만 장표 수를 채우고 끝없이 사소한 수정(폰트 크기, 글상자 위치, 장표 순서 교체 등)이 이어지고 마지막 장에는 ‘감사합니다’를 집어넣는 일들 때문이었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 안에 담는 건 결국 부차적인 일이 되어버린다.
이건 회사 내 조직문화, 갑과 을의 권력 관계와 관련 있지만, 여기서 거기까지 말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이 사례만 소개하자. 사내에서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한 회사가 있었다. 장표 꾸미는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라는 취지라고 했다. 처음에 직원들은 환영했지만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내문화를 담당하는 부서는 ‘보스’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어떤 문서든(프린트 옆에 버린 이면지까지도) 파워포인트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면 해당 팀장에게 경고하고 경고가 누적되면 부서 예산을 줄여버렸다. 그러자 아이디어를 단시간에 정리한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손으로 쓰고 스케치한 문서를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만들어 보고하는 부서도 생겨나고, 파워포인트 문서는 텍스트만으로 채워지긴 했지만 오히려 디자인에 공들이지 않은 ‘러프한’ 느낌을 주기 위한 노력을 했다.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자기검열에 추가적인 시간을 쓰게 된 것이다. ‘보스’의 최초 의도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 모르나 자신의 권력이 아래에서는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해 무신경한 점, 그 지시를 교조적으로 실행한 사내문화 부서는, 의도의 진의 따위는 모르겠고 성과를 내야한다는 목표로 움직인다는 점 등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다음에는, 파워포인트를 대체할 수 있겠다 싶은 앱을 하나 발견했는데 그걸 소개해보고 싶다. 앞에서 말한 문제들 한두 개는 그 앱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 발행 예정일을 넘겨 발송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주말 중에 ‘22일째’ 뉴스레터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경쟁PT가 아닌 이상 사내에서 진행되는 발표나 회의시 참석자들의 성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주도자가 안건의 내용을 전달하고 의견을 나누오 해답을 찾는 과정인데 그 속에서 소비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미리 공유된 문서를 읽고 자신의 의견을 정리한 후 참석한다면 시간 절약 뿐만 아니라 심도 깊은 회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저만의 상상을 해봅니다. 미리 읽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게시할 수도 없지 않나라는 생각도 드네요. 결국 일정은 밀리고 밀리더라고요.
답답함을 표출하는 댓글이 되었네요. ㅎ.ㅎ
최근에 (거의 10년 만에)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할 기회가 있었는데, 전에는 (저 역시 파워포인트 반대파로서🫥)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유용성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 보고서나 책 같은 장문의 글을 나름의 기준으로 요약해 보관하는 일종의 ‘카드’로 활용 가능✍️
- 각 슬라이드마다 오디오를 녹음해 플레이 할 수 있는 기능으로 ‘글’과 ‘이미지’ 사이의 틈을 보완 가능🎤
: 오디오 내레이션을 포함한 슬라이드쇼를 mp4 같은 동영상 형식으로 변환해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콘텐츠의 경우 비디오 제작이 번거로울 때 대신 활용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소개해 주실 앱도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