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째) 만사는 듣고자 했으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의 '지적인 삶'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만사는 주로 문구를 사러 교보문고에 갔었으나 이젠 흥미가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문보장’이라는 문구 특화 코너가 생겼다고하니 한 번 볼까 싶었다.
손글씨 대회 같은 것을 했나보다. 수상작들을 필사한 책과 함께 테이블 위에 전시하고 있었다. 그렇지, 문구와 손글씨는 뗄 수 없는 관계지. 만사는 수상작들을 보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손글씨들이 컴퓨터 폰트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손글씨를 모델로 한 폰트들도 많으니 선후가 바뀐 것인지 모르지만 닮고 싶은 글씨들은 아니었다.
문보장에서 팔고 있는 문구들 중 만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없었다. 이미 써봤거나 알고 있거나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문구가 나오지만 실용성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고,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문구가 아니라 장식품이 되어 버린다. 만사는 자신의 문구 조합이 이미 최적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흥미가 떨어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 작고 반짝이며 갖고 싶게 만드는 새로운 문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견딜만한 실망감을 안고 코너를 떠났다.
만사는 요즘 한국 대중의 지식 동향을 파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한국인들은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지식을 얻고 싶어하는지, 또 그에 따라 출판사들은 어떤 책들을 기획하고 출판하는지 궁금했다.
우선 가장 손쉽지만 의심쩍은 방법은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는 것이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몇 곳을 비교해보면 경향을 알 수 있을까? 교보문고와 알라딘의 종합 베스트셀러 15위까지를 비교해보니 여섯 권이 겹쳤다. 사람들이 어떤 책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얻을 수 있겠다.
책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모두 지적인 삶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적의 자세요정》 같이 건강을 위한 실용 지식은 지적인 생활과 관계 없는 것일까? 이 지점에서 만사는 혼란스러워진다. 아마도 ‘지적인 삶’에 관한 기초가 부족해서이고, 엄밀한 규정을 내리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온라인 서점만 이용하다 오프라인 서점에 나와보면 기획의 안이함을 느낀다. ‘철학’이라는 푯말을 세워두고 매대에 깔아놓은 저 책들이 가여워보이기까지 한다. 철학이라는 대분류 외에 저 책들이 함께 있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 눈에 잘 띄는 매대에 올라와 있다는 이유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만사는 “오늘 뭐 읽지?”를 보고 어떤 책을 읽을지 매일 고민하는 독자들이 과연 있을까 의아했다. 그렇게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이 더 걱정인 사람들이고, 안 읽은 책이 쌓여있지만 정말 꼭 읽고 싶었던 책이 나와 안 살 수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명인들이 TV나 유튜브에서 맥락을 짚어주며 소개한 책들이 잘 팔리는 것 같다. 요즘은 김상욱 박사가 인기인가 보다. 박학다식해서인지 전공분야인 물리학 외에도 방송에서 말을 길게 하던데 메시지보다 메신저인가 하더라.
빨간 책들이 잔뜩 쌓여 있어서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하며 들여다보니 “교보문고와 출판사가 공동 기획”하는 시리즈라고 한다. 만사는 온라인 쇼핑몰의 PB 상품이 떠올랐다. 이 정도 디스플레이면 자사 상품 몰아주기 같은 불공정한 경쟁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다양한 고급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책이라는 나름의 의의를 가진 《지대넓얕》. 양장 합본으로도 나왔구나. 가격은 무려 51,800원. 책의 취지에 부합하려면 오히려 더 얇고 싸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농담 같은 책 표지도 봤다. 저런 표지는 예전에 길바닥에 깔아놓고 파는 책들에서나 보던 스타일이다. B급 소설인가 실험적인 독립출판물인가하고 다시 봤더니 대단한 분이 쓴 책이었다. 그런데 저 설정샷은 뭐고 세 분 중 누가 박미옥 형사님인가요? 아무튼 이 책은 여기저기서 아주 잘 팔리고 있더라.
책 구경은 충분히 했다. 좀 걸었더니 만사는 시장해졌다. 그렇다면 갈 곳이 있다. 아직 저녁식사 시간 전이니 자리도 있을 것이다. 이 근처에 오면 항상 찾는 메밀국수 전문점 미진이다. 내 메뉴는 항상 판메밀. 예전에는 한 판을 추가해 먹어야 양이 찼으나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충분하다.
오늘 기대했던 대형서점의 매대 관찰을 통한 한국 대중의 지식 동향 파악에는 실패한 것 같다. 만사는 듣고자 했으나 매대는 아무런 이야기도 건네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교보문고 최근에 리모델링 한것 같은데 계산에만 신경쓰고 책 선정에는 별다른 고민이 없는거 같더군요.. 메일 맛있어 보이네요. 미진인가요? 항상 줄서 있던데 용케 드셨네요. 글 잘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대중의 지식 동향은 트위터, 잘난 사람 잘난대로 살도 못난 사람 못난대로 사아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