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째) 만사는 낭만주의에 대해 잘 알고 싶다
테드 지오이아의 글을 읽으며 '낭만주의에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만사는 일방적 기술 발전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고 느낀다. 최근의 예로는 미국작가조합의 파업이 떠오른다. 기술주의(technocray)1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은 계속 확산될 수도 있지 않을까?
테드 지오이아(Ted Gioia)의 최근 글 ‘새로운 낭만주의를 향한 노트(Notes Toward a New Romanticism)’에서 그 힌트를 얻는다. 지오이아는 현재의 상황을 1800년 초의 낭만주의 운동과 비교한다. 내용, 방식 모두 흥미로운 글이어서 정리해본다.
글쓴이는 “현재의 기술주의가 매우 억압적이고 조작적으로 변화하면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그에 대한 저항이 1800년대 초의 낭만주의 운동과 비슷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새로운 낭만주의가 필요하지만,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나 “1800년경의 세계와 현재와의 유사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차 및 2차 자료, 음악 감상 프로그램, 시각 예술 연구 등을 이용하는 “낭만주의 운동에 대한 심층적 조사를 시작”했는데, 주요 특징은 이렇다.
시간순으로 구성(큰 주제 다룰 때 주로 사용)
조사 내용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얻음
메모 형식으로 작성(개인적 용도)
음악이 사회 변화의 초기 지표라고 생각
지금까지 조사하며 작성한 개인적 용도의 메모도 일부 공개했다. 제텔카스텐 방법론과 닮은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서 반갑다(지오이아는 자신의 노트 정리 방법에 대한 글도 쓴 적이 있다). 각 연도별로 하나 정도씩 옮겨본다.
1800년
영국 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
워즈워스는 불타는 선언문을 서문으로 삽입하여 《서정 민요(Lyrical Ballads)》(1800)의 새 판이 출간되었음을 알린다. 그는 이전 작가들의 엘리트주의를 조롱하고 서민들의 언어가 더 예술적이라고 주장하며, 이제부터 시인들은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로 ... 서민 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상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1801년
이제 60대에 접어들어 문학 경력의 막바지에 다다른 사드 후작은 (다시) 체포되어 재판 없이 구금된다. 오늘날의 대중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사드는 (오늘날의 알고리즘 시대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진보 이념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온갖 종류의 어두운 에너지와 극단적인 행동을 펼쳤던 '이성의 시대'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합리주의가 공포의 통치(작가 자신도 거의 죽을 뻔한)로 변질된 이후에는 사드의 환상이 그렇게 잔인해 보이지는 않았다. 계몽주의가 쇠퇴하던 시대에는 사실이 가장 피비린내 나는 허구보다 더 잔인해졌다.
1802년
베토벤은 이제 겨우 31살이었지만 급격한 청각 장애로 인해 자살을 고민하고 있었다.
1798년에 첫 증상이 나타났지만 지금은 증상이 훨씬 더 심해졌다. 베토벤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곳에서 청력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사회적 접촉도 피하기 위해 시골 마을인 하일리겐슈타트로 이사한다.
1802년 10월 6일자 편지에서 그는 "저는 동료들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도, 세련된 대화를 나눌 수도, 상호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도 없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저는 추방당한 사람처럼 거의 혼자 살아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그의 음악은 더욱 거만해지고 고집스러워진다. 몇 달 전만 해도 베토벤은 하이든, 모차르트, C.P.E. 바흐의 음악을 모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청각 장애를 겪은 후 그의 음악이 어떻게 더 급진적으로 발전했는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렵다. 거기에는 분명 교훈이 있을 것이다.
1803년
동료와 라이벌보다 훨씬 앞서 활동한 작곡가가 있었을까? 1803년경에는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베토벤이 하는 일을 따라잡지 못했다. 하이든이 물러난 후 그의 주요 경쟁자는 누구였을까? 훔멜이나 베버? 살리에리 아니면 체루비니?
파가니니는 겨우 21살, 로시니는 겨우 11살이었다. 슈베르트는 6살이고 쇼팽과 멘델스존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베토벤이 그 길을 보여 주었지만, 음악계가 그의 더 큰 영향력을 가늠하기 시작하려면 10년 이상이 지나야 할 것이다.
1804년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이라는 문구가 처음 사용된 것은 올해부터이며,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것은 창조적 정신을 옹호하는 것 이상이다. 또한 과학이 인간 운명의 궁극적인 지배자라는 과학주의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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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나폴레옹에 반기를 든 것은 유럽을 휩쓸고 있는 미학적 반전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토벤과 다른 예술가들은 프랑스 합리주의를 자유와 개인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시대의 선구자로 여겼다. 하지만 진보에 집착하는 이 이데올로기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
음악이 폭압적인 합리주의를 해체하고 보다 인간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글쓴이는 1800년경의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이 현재에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와 함께 아래의 것들을 상상해보길 제안한다.
알고리즘과 기계론적 사고가 너무 억압적이라는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사람들이 기술을 해방, 권한 분산, 인간 번영, 즉 영혼을 키우는 풍요로움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악의적인 통제 수단으로 여기며 저항하기 시작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다른 모든 분야에 대한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의 지배와 독재에 대한 반란을 상상해 보세요.
사람들이 좋은 삶은 코딩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것과 함께 시작한다고 결심하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캘러 배스 효과(color bath effect)’라는 것이 있다. “한 가지 색깔에 집중하면 해당 색을 가진 사물들이 눈에 띄는”, 즉 “무심코 지나쳤던 것을 의식하면서부터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어떤 특정 자동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도로 위에 그 차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것과 같다.
요즘 만사에게는 ‘낭만주의’가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