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째) 만사는 이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케네스 골드스미스, 《문예 비창작》 (2023)
이 책은 매우 성가시고 불편하다.
《문예 비창작: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 다루기》, 케네스 골드스미스(지음), 길예경·정주영(옮김), 워크룸프레스, 2023.
저자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자신이 “일종의 테크노 유토피아주의”(p.351)를 설파하고 있다고 ‘자백’한다. ‘테크노 유토피아주의’는 쉽게 말해,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책에서 일관되게 “문학의 미래는 점점 더 기계와 관련될 것”(p.252)이고,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문학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술 발전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오래된 주장은 아직 실현된 적이 없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유토피아’인지도 확실치 않다.
또 그는 “문학으로 수십 년 전에 미술계가 일으킨 전유 열풍을 따라잡으려는 것일 뿐”(p.188)이라고 고백하는데, 그 모델은 앤디 워홀의 팝아트다. “기존의 글쓰기를 폐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문학이 (그 범위와 표현의 잠재력이 무한함에도) 틀에 박혀 있다고 느”(p.23)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창조적 글쓰기와 관련해 앤디 워홀의 작업과 삶을 탐구하는데, 워홀의 기계적 성향과 마니아적 생산은 우리가 오늘날 디지털 글을 다루는 방식과 유사하다. (p.31)
‘비창조적 글쓰기’는 저자가 주장하는 글쓰기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에 대한 정의를 옮기고 싶어 색인까지 이용해 찾아봤으나 간명한 규정은 없다. 책 전체에 흩뿌려 놨을 뿐이다. 아마도 이 부분이 책 전체의 핵심 내용 아닐까 싶다. 좀 길지만 인용해 보겠다.
아방가르드가 공통으로 받는 비난은, 엘리트주의적이고 최근 동향에 어둡고 상아탑에서 분투하며 몇 안 되는 정통한 사람에게만 호소한다는 점이다. 대중주의라는 허울로 포장한 많은 '난해한' 작품이 만들어졌으나 결국은 그것이 의도한 청중에게 해독할 수 없거나 심지어는 상관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할 뿐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비창조적 글쓰기는 진정으로 대중주의적이다. 왜냐하면 피터먼의 비창조적 글쓰기는 우리가 읽기도 전에 그것이 무엇인지, 즉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정확히 말하며 처음부터 의도를 분명히 밝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는 의문은 이것이다. 왜? 그리고 이 의문과 함께 우리는 우리를 그 대상에서 떼어내 사변의 영역으로 데려가는 개념의 영토로 이동한다. 우리가 마음 편히 책을 던져 버리고 논의와 함께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즉 비창조적 글쓰기가 환영하는 움직임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시점부터다. 책은 사고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다. 우리는 독자 됨(readership)을 맡는 것에서 사유자 됨(thinkership)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이동한다. 읽기(와 그에 따른 독자 됨)라는 짐을 버리면 그때부터 우리는 비창조적 글쓰기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학작품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단순한) 개념을 이해하면, 지리적 위치, 소득 수준, 교육 혹은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이런 글쓰기를 활용할 수 있다. 비창조적 글쓰기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pp.157-158)
이것이 과연 대중주의적인가(저자의 주장을 접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대중이 얼마나 있을까), (인용문의 “왜”와는 다른)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해야하는가, 문학이 반드시 미술(특히 팝아트나 개념적 미술)의 전철을 따라야 하는가 등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이 책에서 유용한 내용이 하나 있었다면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관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지식정원에 정리해 놓았다. ‘카드’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매우 반가웠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기대를 가졌으나 지금은 매우 실망스럽다. 글쓰기의 새로운 개념을 모색하고 제안한 점은 인정하지만, 기술에 대한 낙관적 기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주장 등은 이 책에 대한 호의를 거둬들이게 만든다.
그러나 저자의 논증은 AI 앞에서 무력하다. 챗GPT의 프롬프트만 잘 활용한다면 그가 책에서 길게 설명했던 것들보다 더 ‘대중주의적’으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이후에는 AI를 사용하는 것도 비창조적 글쓰기의 범위에 포함시킬지 모르겠지만, 그가 낙관하는 기술의 발전속도가 10여 년만에(2011년 발간) 그의 아이디어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만사는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이 문학, 글쓰기 등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것이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스스로 믿고 좋아하는 바를 좇으며 사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을 시간에 벤야민이나 조이스를 몇 페이지라도 읽는 것이 더 유익할 것 같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인터넷 서점 링크가 안걸린 건 굳이 구입할 필요 까지는 없다는 의미이실까요?
잘 모르는 낱말이 여러 개 나오네~~ 내가 무식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