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째) 만사도 실험이 하고 싶다
조르주 페렉, 《생각하기/분류하기》 (2015)
만사는 조르주 페렉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그의 책을 몇 권 가지고 있는데, 그의 소설보다는 산문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그의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하기/분류하기》, 조르주 페렉(지음), 이충훈(옮김), 문학동네, 2015.
저자 소개를 옮겨보면 이렇다.
1936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1920년대에 프랑스로 이주한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다. 1940년 이차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전사한 후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어머니가 목숨을 잃자, 고모에게 입양되었다. … 1959년 군복무를 마친 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신경생리학 자료조사원과 파리 생탕투안 병원 문헌조사원으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했다. 직업상 다양한 자료와 방대한 기록을 다루어야 했던 이 경험은 그의 작품세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5년 『사물들』로 르노도 상을 받았다. 1967년 작가와 화가, 수학자 등으로 구성된 실험문학모임 울리포(OuLiPo)에 가입하고, 예술적 창조의 근간을 형식 제약에 두는 울리포의 실험정신을 수용해 매 작품마다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낸다. … 이 독특하고 방대한 작품으로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지만, 1982년 45세의 이른 나이에 기관지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 다양한 작품을 남기며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한 페렉은, 오늘날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실험정신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만사는 “실험정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즉흥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 책은 그게 편견임을 알려준다. 페렉은 자신의 내적, 외적 세계의 상황과 사건을 샅샅이 집요하게 글로 기록하고 분류하고 특정한 형식에 담는다.
내가 쓴 책들은 서로 다른 밭 네 필, 네 가지 질문 방식과 연관되는데, 결국에는 어쩌면 같은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매번 각기 다른 문학작업 양식에 걸맞은 개별적인 관점에 따라 제기된 것들이다.
p.11, 〈모색중인 것에 대한 노트〉 중
그가 쓴 글이 이 네 가지 중 어떤 것에 해당하는지 이리저리 퍼즐처럼 맞춰보는 것도 재밌다.
'사회학적' 방식, 즉 일상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것 (나를 둘러싼 세상)
자서전 영역 (나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
유희적인 방식 (언어)
소설적인 것, 이야기와 사건의 우여곡절에 대한 취향, 침대에 배를 깔고 엎드려 후딱 읽어치우는 책을 써보고자 하는 소망과 관련한 것 (허구)
페렉이 활동했던 실험문학모임인 ‘울리포(OuLiPo1)’가 형식에 대한 실험정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글들은 당황스러우며 ‘자극적’이다.



페렉이 21세기에도 살아있었다면 어떤 작품을 더 남겼을까? 텍스트만을 고집했을까? 아니면 텍스트 너머로 확장된 형식을 만들어 냈을까? 궁금하다.
다른 모든 책의 열쇠가 될 책을 찾는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사서들처럼, 우리는 완성된 것에 대한 환상과 파악할 수 없는 것을 마주했을 때 생기는 현기증 사이를 부단히 오간다. 완성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단번에 지식에 이를 수 있게 해줄 유일한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한다. 파악할 수 없는 것을 고려해, 질서와 무질서가 우연성을 가리키는 두 개의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이 두 가지는 책과 체계의 마멸을 은폐하는 데 쓰이는 미끼요, 눈속임일 수도 있을 것이다.
p.37, 〈책을 정리하는 기술과 방법에 대한 간략 노트〉 중
질서와 무질서에 대한 생각은 유토피아로 연결된다.
R) 유토피아
유토피아치고 따분하지 않은 것이란 없다. 우연, 차이, '다양성'에 마련된 자리가 그곳에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며, 질서의 통제를 받는다.
어떤 유토피아든 그 이면에는 항상 엄청난 분류의 의도가 숨어 있다. 모든 것에 제자리가 있고 각각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pp.130-131, 〈생각하기/분류하기〉 중
만사가 읽던 책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에세이 또는 산문을 이렇게도 쓸 수 있다니.
글을 쓰다보면 ‘그럴듯하게’ 쓰고 싶다는 강박이 생기고, ‘그럴듯하게 알려진’ 글을 흉내내고 싶다는 유혹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든다. ‘남 따라하는 것을 지독히 싫어하는 네가 왜?’ 그러고는 다 쳐내거나 비틀어버린다. 너무 멀리 가기도 한다. 나르시시즘으로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 만든 경계를 넘어가는 실험하기’와 ‘잠자던 나르시시즘을 깨우기’. 만사는 이 둘을 혼동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페렉으로부터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잠재문학작업실(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의 약자. (p.12)




나는 요즘 자꾸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네~~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의미여야 할까? 곧 닥쳐올 것만 같어~~